과포화되는 요식업의 열기에서, 경쟁력은 그저 '가격' 하나 뿐으로 보여지는 분식집의 음식들을 먹으며 작년에 써놓은 나의 일기를 읽었다. "인간 낙제를 간신히 면한채"로 살고있다는 글귀가 보인다. 물론, 지금의 나는 다르게 살고있다. 이제는 완벽하게 인간 낙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기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학교가 끝나기도 전, 나는 실용음악학원으로 향했더랬다. 단어장보다는 오선지를, EBS보다는 미디 강좌를 더 많이 봤었다. 그래서 그런지, 졸업이 내게 주는 감흥은 딱 "자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참고로, 갓 졸업을 한 고등학교 3학년에게 기다리는 1, 2월은 그리 다양한 선택지를 주지 않는 듯 했다. 음주, 또 음주. 이토록 즐겁게 놀았던 적이 있던가? 가족보다도 많이 보는 친구들은 나의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고, 술과 담배는 당연히 따라오는 필수 옵션 정도 됐다.
나와 거의 같이 살았다고 봐도 무방한 친구에게는 차가 있었다. 돌이켜보니 스무살에게 차를 준다면, 정말 차의 수명을 20년은 깎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해를 보러 간 기억은 셀 수도 없고, 우리가 드나든 식당은 일일히 다 기억도 못할 지경이다. 정말 내일 걱정 없이 놀았다. 3월이 접어들며, 지독한 숙취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아직 괜찮았다.
3월이 오고,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살아왔던 나의 자취방을 떠나 대학교 근처에 조그마한 원룸을 얻었다. 나의 학교는 고향에서 꽤나 먼 거리였고, 자취는 필수적이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친구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혼자서 타지에 왔다. 나는 나이에 비해 자취 경력이 꽤나 길었기에, 자취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가족과 집에 같이 있다면 불편할 지경이다. 다만 꽤 어린 나이부터 혼자 살아왔기에,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빈도는 월등히 높아졌다. 그렇다고 스무살의 대학생이 부모님에게 어린 아이처럼 안기며 사랑을 갈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안에서만 삼키는 외로움은 이제 익숙하다.
나는 알고 있다. 내 성격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내가 싫다고 느끼는 일들은 필수적이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철이 없고, 고집이 센 성격이다. 이는 대학교에서도 똑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전공에 집중할 수 없고, 교양필수나 학점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이 싫었다. 과에서 갔던 MT, 신입생 환영회 등 학교 행사는 매우 재밌었고, 선배, 동기들과 많이도 친해졌지만, 정작 나는 대학교의 시스템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결국 또 놔버렸다. 동기들의 연락은 보지도 않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에서는 8일 정도 머물렀다. 아마도 저 때가 기말고사를 보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즐겼다.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 외롭다, 쓸쓸하다 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은 때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일본에서 머무는 8일간 외롭다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았다. 완벽한 타지에서, 완벽히 혼자였지만, 바빠도 힘들지 않았고,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다.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다. 물론, 학점도 많이 정리당했다.
생각을 정리한 결과,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휴학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9월 쯤 부터 부동산에 방을 내놓고, 짐을 정리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지 아마 한달이 채 안된 것 같다. 며칠간은 나의 고향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조금 고향에 돌아왔다는 감각이 현실의 영역으로 느껴진다. 이런 길을 거쳐 세번째 집으로 정착했다.
9월 말부터 10월 초에는 미뤄뒀던 합작 마감을 마무리 짓느라 밖에도 잘 나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합작 마감이 끝나간다. 합작 마감은 항상 잡을때는 적어보이고, 작업을 시작할 때는 많아보이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듯 하다. 최근에는 봇치 더 락 합작을 끝냈다. 이제는 남은 마감이 하나밖에 없어서 매우 후련하다. 위의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인터넷에서든 현실에서든 떠나간 친구들과 새로 생긴 친구들이 있다. 그렇게 좋은 이유들로 떠나간건 아니지만, 떠나가기 전의 기억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잃어버린 것들을 부정한다고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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